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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정신, 섬과 생명, 삶을 지킨 영천수신의 산물

2019년 01월 23일(수) 09:20
고병련 news@jejusori.net
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96) 토산리2 행기물 산물

토산리는 1000년 전 탐라 왕조 시절 설촌한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알려진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토산리에 토산봉수대가 있다고 기록한다. 봉수를 올리는 망이 있다고 하여 토산망이라고 불렀는데, 토산봉이 있는 오름 지역은 위에 있다고 하여 웃토산, 해안지역은 밑에 있으니 알토산이라 했다. 처음에 토산리(土山里)로 쓰다가 옥토망월형이란 풍수지리설에 따라, 토산(兎山)으로 마을 이름을 바꿨다.

이 마을에 있는 거슨새미와 노단새미는 호종단이 물혈을 끊으려 했던 단혈전설이 전해지는 마을의 정신적인 기둥인 산물이다. 거슨새미는 한라산을 향해 거슬러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높은데서 낮은 쪽인 바다 방향으로 순리적으로 흐른다고 해서 노단새미라 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종달리에서 토산리까지 호종단이가 물혈을 모두 떠버려서 산물이 솟는 곳은 없다고 말한다. 마을사람들은 샘이 순리에 거슬러 흐르는 거슨새미가 순리대로 흐르는 노단새미를 마주보는 것은 거슨새미의 반항 기질을 추스르기 위한 것이라 믿는다.

거슨새미는 토산초등학교 방면 토산봉이라는 오름의 언덕배기에서 용출하여 바다로 흐르지 않고 한라산을 방면으로 흐르는 역천수(逆泉水)로 유명하다. 이 산물은 토끼처럼 생긴 토산망이라고 하는 망오름 자락에 있는 산물이다. 예전에는 물의 위치에 따라 상, 중, 하로 구분하여 상탕은 마을제 등에 쓰는 귀한 물로 이용하고, 중탕은 식수, 하탕은 쉐물(소 먹이는 물), 빨랫물 등으로 사용하였다. 

▲ 거슨새미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산물은 산남동쪽 끝 샘이란 팻말이 있는 깊이와 직경 1미터의 원형통 바닥에서 솟아난다. 예전에는 물을 뜰 때 허벅을 아예 물통에 담가 물이 가득차면 건져내 물팡에 올려놓고 지고 왔는데, 이제 물팡자리는 메워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 거슨새미 발원 지점(원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예전에는 이 물을 이용해서 토산에서 유일하게 논농사를 지었다고 하는데, 한동안 무관심 속에 산물이 방치되어 오다가 토산1리마을회에서 설촌의 역사가 되는 이 샘을 2009년 정비하여 유원지로 복원하였다. 그리고 거슨새미라고 쓴 표석을 세우고 ‘상수도시설이 되기 전에는 인근 마을(가시·세화·신흥리 등)의 주요한 생활용수로 사용되었으며, 조상들이 물을 지켰던 지혜와 행기무덤과 함께 거슨샘미 산물 신인 영천수신(靈泉水神)을 기리기 위해 복원하였다’고 새겨 놓았다.

복원된 모습을 보면 맨 위 상부 지점에 우물 형식인 원형의 통 안에서 솟은 산물이 아래로 흘러내리게 하였다. 예전에 논농사를 했던 모습을 재현하는 일곱 칸의 계단식 다랭이 논 형태로 물통을 만들고 창포 등을 심어 놓았다. 이 산물은 산남지역 동쪽 끝 샘이다.

▲ 다랭이논 형태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지금은 거슨새미로 올라가는 하부지점 소롯길(오솔길 같이 작은 길이란 뜻의 제주어) 가에 토관처럼 움푹 팬 곳에서 다량으로 용출된다. 그 하부에 산물을 받기 위한 시멘트로 만든 물통이 있고 물통은 지붕을 씌우고 재 단장하였다. 표석 앞에도 새롭게 원형의 작은 못을 만들어 놓았다. 이 산물은 신흥리, 세화리 주민들까지 물 사용할 만큼 수량이 풍부하였다고 한다.

▲ 소롯길 가 용출 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중간 지점 물통(집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노단새미는 토산망에서 아래 쪽 영천사라는 절 앞 언덕 밑에서 솟아난다. 산물이 솟는 곳은 흙으로 된 벼랑으로 자주 무너져 내려, 절에서 임시조치로 한동안 차광막을 쳐 보호하기도 했었다.

▲ 노단새미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노단’이란 ‘오른, 바른, 옳은’을 뜻하는 오른쪽을 일컫는 제주어다. 산물은 한 지점 여러 군데서 솟아나는데, 놋그릇 형태의 두 개의 구멍과 약간 거리를 두고 다시 두 개의 움푹 파인 구멍에서 솟아난다. 노단새미와 좌측으로 20m 떨어진 곳에도 산물이 솟아난다.

▲ 노단새미 발원 지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영천사에서는 산물들을 모아 연못을 만들고 탐방객들이 쉴 수 있도록 연못과 족욕탕 등을 조성하여 소공원으로 만들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다른 마을의 산물처럼 형체도 알아 볼 수 없게 개조한 것이 아니라 처음 그대로의 노단새미를 보전한 것이다. 예전에 이 산물은 마을 제를 할 때 미리 물을 길어서 봉해 놓았다가 메를 짓고 감주를 빚는데 사용한 신성시 한 물이다.

▲ 노단새미 소공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노단새미 연못.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노단새미에서 서쪽으로 80m 떨어진 곳에도 샘이물이라는 산물이 있다. 이 산물은 보호시설을 갖추고 사찰에서 사용했던 물로 지금은 인근 농장에서 농업용수로 사용한다.

▲ 샘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토산리 산물에서 알 수 있듯이 물혈전설은 단지 전설일 뿐이라고 폄하할 수 있지만, 제주 섬에서 유독 표선면과 성산읍에 쓸 만한 산물이 별로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단혈 이야기인 행기물 전설이 전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생명수로써 물을 개척한 제주정신을 승화시키고 섬의 생명을 지킨 위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행기물(산물) 단혈전설

옛날 중국에서 제주의 산혈(山穴)과 물혈(水穴)을 모두 끊어버리도록 호종단(胡宗旦)이라고도 하고 고종달이라고도 하는 지관을 파견하였다. 왜냐하면 제주섬에서 자꾸 날개 돋힌 장수들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제주섬에서 태어난 장수가 천하를 통일할 징조이며 섬의 산혈과 물혈이 흐르는 맥으로 보아 충분히 이를 뒷받침하고도 남았던 것이다. 

호종단은 종달리로 들어와 물징거에서 물혈을 뜨고 남쪽을 향하여 혈을 떠나갔다. 그에게는 제주섬의 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리서가 있어 혈을 찾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호종단이 이곳으로 거의 올 무렵 넙은밭에서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갑자기 고운 처녀가 나타나 다급하게 사정했다. 

"저기 저물을 요 놋그릇에 떠다가 저 소길마 밑에 잠시만 감춰줍서예."

놋그릇을 행기라고 한다. 농부는 점심을 먹으려면 어차피 물이 있어야 하겠기에 선뜻 그렇게 하니 처녀는 행기로 쏙 들어가 사라져 버렸는데 그 순간에 두 샘의 물은 말라버렸다. 그때 호종단이 왼손에는 지리서를 들고 개 한 마리를 앞세워 다가와서 묻기를, "여기 고부랑낭(꼬부라진나무) 아래 행기물(놋그릇물)이 어디에 있소?" 호종단이 지닌 지리서에는 노단새미와 거슨새미가 놋그릇에 담겨 소길마 밑에 숨어 있는 형태라고 적혀있었으니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도 미리 예측하여 기록되었던 것이다. 

농부는 시치미를 뚝 떼고 "그런 물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개는 자꾸만 소길마 밑으로 파고들려고 했다. 농부가 남의 점심을 탐낸다고 하여 지팡이로 쫓아버렸다. 호종단은 혼잣말로 "이 근처가 틀림없는데..."라며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찾을 수가 없자 지리서를 북북 찢어 던져 버리며, "쓸데없는 문서로고" 하고는 서쪽으로 떠나버렸다. 

농부에게 물을 떠다 놓도록 부탁한 것은 두 샘의 정령(精靈)으로 농부가 소길마 밑에서 물이 담긴 놋그릇을 꺼내어 노단새미와 거슨새미에 부으니 샘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종달리에서부터 토산리에 이르는 모든 샘은 호종단의 손에 혈을 잡혀 말라버렸다. 단지 이 두 샘만 살아남아 지금도 청청하게 샘솟고 있으며, 꼬부랑 나무처럼 생긴 소길마 밑에 숨어 있는 헹기 속의 물이 살아났다고 해서 ‘꼬부랑나무아래헹기물’라고도 한다.

호종단의 단혈과 관련하여 제주시 병문천 인근에 모양이 말과 같다 해서 이 물을 마시면 능히 100보를 날아갈 수 있다고 하는 ‘말샘’이라는 두천(斗泉)이 있었는데, 호종단이 영기로 눌러 없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호종단은 떠놓은 물을 가지고 가다가 한림읍 협재리 앞바다에서 주머니 끈이 떨어져 쏟아져 버려 한림읍은 물이 풍부한 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또 제주시 산지에서 배를 타고 나가려다가 호종단이 물에 빠져버린 후 산지천은 물이 풍부한 하천이 되었다고 한다.

# 고병련(高柄鍊)

▲ 고병련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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