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95) 지그문트 바우만 저, 이일수 역, 액체근대, 강, 2009

/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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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은유에 사용된 단어의 의미는 달라진다. 동양사상에서 액체를 대표하는 물은 세상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언제나 낮은 곳에 임한다는 좋은 의미였다. 반면에 사회학자 바우만(Zygmunt Bauman)은 액체의 다른 특징인 ‘유동성’에 주목해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견고함이 무너졌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근대’로 번역된 ‘Modernity’는 ‘현대’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 ‘Liquid Modernity’는 ‘액체 현대’를 말한다. 바우만은 ‘유동적 현대’가 초래하는 인간조건의 심오한 변화를 여러 분야에서 부정적으로 그려낸다. ‘액체 근대’ 이후에도 연작 시리즈라고 할 만큼의 많은 후속작을 썼다. 특히 대학 정년 이후에 수많은 책을 썼다.   

바우만은 유태계 폴란드인 학자로 두 번이나(1939-44년, 1968년) 난민으로 살았고, 주변인으로서 사회를 관찰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삶을 현대 시대와 연결하는 ‘사회학적 글쓰기’의 표본이다. ‘액체근대(2000년)’의 전작인 ‘현대성과 홀로코스트(1989년)’로도 유명하다. 여기서도 ‘유동성’ 개념과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는데, 유동한다는 뜻인 폴란드어 형용사 plynny가 바르샤바 게토의 독특한 사회적 맥락을 묘사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희생자인 경제학자 루드비크 란다우가 일기장에 쓴 문장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이 유동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바우만 평전인 “지그문트 바우만 - 유동하는 삶을 헤쳐나간 영혼”, Izabela Wagner, 김정아 역, 554면 이하 참조)

‘공동체와 시민’의 상실

바우만은 ‘액체 근대’ 책에서 현대 사회의 유동성을 다섯 개의 기본 개념(해방, 개인성, 시·공간, 일, 공동체)으로 다룬다. 그는 유동화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목적을 상실했고, 인간 해방은 물론 그 어떤 대안도 추구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탄한다. 

‘유동화된 사회’의 극단적인 표현에는 “사회 같은 것은 없다”는 마가렛 대처의 악명 높은 구호가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공적 영역이 점차 사라졌다. 공적 영역이 효율성을 이유로 사적 영역으로 대체되었다. 공적 시민은 사적 개인이 되었다. 유동하는 사회에서 공동체는 전체가 아니라 부분으로 사람들을 분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사회 유동성이 초래한 불확실성을 사회가 아닌 개인이 떠맡게 된다. 

총체화된 자본주의는 ‘유동화된 세상’을 초래하며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회 규칙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유동적인 자본은 고정된 노동을 조종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생산에서 소비로 옮기게 한다. 사회의 공적 공간은 표면상의 공적 공간에 머물면서 제대로 된 공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현대 사회의 유동성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사회 유동성이 공적 영역을 축소시켜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나, 사회적 강자는 유동성을 자신의 자산으로 만들고 이를 공교히 하는 사회 규칙을 만든다.  

‘사적 영역’에 의한 ‘공적 영역’의 식민지화 

바우만은 국가의 사회적 기능을 경제적 계산에 종속시키는 ‘신자유주의 거버넌스’에 매우 비판적이다. 이를 “사적 영역에 의한 공적 영역의 식민지화”라고 표현한다. 그는 육체와 정신의 적절하고 바람직한 상태인 ‘건강’ 지표를 사회에 적용하는데, 사회의 유동성이 건강이라는 규범의 위상을 심하게 약화시킨다고 보았다.

바우만은 오늘날 비판이론의 임무는 사라져가는 공공 영역을 수호하는 것이며, 식민화된 공적 공간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봤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가 “비판이론의 과제는 전도되었다”라는 극적인 표현으로,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로 대표되는 하버마스의 주장과 자신의 주장을 대비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하버마스는 다른 맥락에서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 테제를 주장했는데, 바우만이 이를 ‘공적 영역에 의한 사적 영역의 식민지화’로 괜한 오해를 한 게 아닌가 싶다.) 

오늘날 비판이론의 임무는 사라져가는 공공영역을 수호하는 것, 아니 그보다는 빠르게 비어가는 - 민주적 제도들이 성취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관심 있는 시민'의 출구와 실제적인 힘이 빠져나갈 곳이 유기된 탓에 - 공적 공간을 정비하여 사람을 채워 넣는 일이다. '사적인 것들'을 식민화하여 '공적인 것'이 시작된다는 말은 이제 옳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사적인 것들이야말로, 사적인 관심과 걱정, 추구의 언어로 온전히 표현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내몰아버리면서 공적 공간을 식민화하고 있다. (64면)

세계화된 자본, 지역화된 정치

‘액체 근대’ 책에는 간략하게 다루고 있지만, 바우만은 세계화된 자본에 대응하는 국가의 대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후속작 ‘위기의 국가’에서 상세하게 다뤘다. 물론 세계화에 따른 국민국가의 위기와 복지국가의 위기에 대해서는 바우만 외에도 여러 사회학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바다. 

자본은 지구 공간에서 움직이지만, 정치는 여전히 국가 내에 머문다. 세계화된 자본은 시장 외에 여러 영역에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모든 것이 유동적이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자본은 유동적일수록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 세계적인 자본 유동성에 대처하기에 지역 규모에서 움직이는 국가의 역량은 역부족이다. 세계 규모의 문제를 다루는 거버넌스는 국제사회에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낡은 것은 소멸하고 새 것은 아직 태어날 수 없는 궐위(闕位)의 시간(interregnum)에는 수많은 병적인 징후들이 생겨났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옥중수고’에서 언급한 ‘공위기(空位期)’ 개념(왕위 또는 권력의 공백 기간을 뜻함)을 바우만은 그의 ‘액체 근대’에 적용했다. 

고체 근대의 후원 아래 태어나고 발전한 정통 사회학이 인간의 복종과 순응의 조건들에 온 신경을 썼다면, 액체 근대에 걸맞은 사회학이 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자율성과 자유의 촉진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대안을 제시하는 것, 문제 해결의 방법을 마련하는 것만큼 어려운 작업이 있을까 싶다. 이는 이론보다 현실에서 더 어렵다. 

나가며

필자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장경제와 공공 영역의 조화가 답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일시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사회 전 영역에 시장경제의 원리를 부당하게(부정의하게) 확장하지만, 시장경제과 공공영역은 다르게 다루어져야 한다.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 북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이 세계화된 규모의 경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필자는 주목한다.

세계화된 자본주의, 총체화된 자본주의는 ‘유동화된 사회’의 모습으로 우리의 일상과 규범을 바꿨다. 바우만의 ‘액체 근대’는 현대 사회의 병리적 모습을 진단하는 데 좋은 안내서가 된다. 물론 비판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은 무척이나 어려운 작업이다. 비판이론의 과제인 동시에, 현실 정치의 당면 과제다.  

선거의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정치도 우리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절실한 문제를 다루는 중대한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정치인들에게 특권을 버리고 투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왜 여전히 어려운 과제일까. 정치인들이 국민과 시민의 행복을 위하는 공복(公僕)이 되겠다고 외치는 것은 선거일 전날까지인가. 유동성이 활개 치는 현대 사회에서 유동성에 굴하지 않는 탄탄한 공공지대가 형성되길 바라는 것은 환상일까. 이전보다 어려운 과제 앞에 놓인 상황에서 우리는 스웨덴의 타게 엘란데르, 덴마크의 앙커 요한슨,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과 같은 정치인이 등장하길 소망한다. 한국의 정치가 여전히 3류, 4류에 머문다면 희망은 이내 사라진다.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 법학과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법학박사.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철학/법사회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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